지난번 메일에서 힘들었던 경험을 나누었는데 참 많은 분들께서 걱정과 위로의 메일을 보내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답신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스몰브랜드 사업을 하다보면 어쩔수 없이 멘탈이 흔들리는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필연적인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고, 그 사실을 저도 여러 경험으로 잘 알고 있지만 매년 새로운 기분이 듭니다. (새로운 불안감도 탄생)
다만 불안감이 너무 커진다면 나만의 동굴로 계속해서 들어갈 게 아니라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나만의 회복 루틴을 만들거나 실행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한주간 잘 먹고, 푹 자고, 목욕도 몇번이나 했습니다. 일을 살짝 내려놓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더니 이제는 전보다 더 에너제틱 해진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그만큼 굳은 살이 생긴 거 겠지요?
즐거운 소식들도 몇가지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한 출판사에서 새롭게 출판예정인 '한국의 세련된 인기샵 100'(가제)에 삭스타즈가 실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주에는 간단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오픈한지 이제 한달 남짓 지난 가게인데 어떻게 알고 일본에서 연락을 했는지 참 신기하네요. 요즘 한국 관련 컨텐츠가 확실히 대세인 것 같기는 합니다.
그리고 오는 7월에는 '카콜' 작가님과 함께 삭스타즈 서촌점에서 전시를 갖기로 했습니다. 첫 미팅을 마쳤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카콜 작가님은 일러스트 작가로는 드물게 2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인기 작가입니다. 대표적인 시리즈로 잉크 피플이 있는데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어떤 모습으로 서촌점이 꾸며지게 될 지 기대가 됩니다. 다음달 중순부터는 홍보에 들어갈 예정이니 자세한 내용은 정해지는 대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Seoul people #35
카콜 / 50.0 x 60.0 cm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에는 일본의 글로벌 양말브랜드 CHUP에서 서촌점 축하를 해주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삭스타즈를 창업하게 된 여러 계기 중에 하나가 CHUP을 일본 편집숍에서 보고 감명을 받았던 사건이었는데, 13년이 흘러 이렇게 저희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축하해주기 위해 일본에서 와줬다는게 감동적이었습니다. (물론, 이번 방문은 한국 시장조사의 목적도 있었겠지요 ㅎㅎ)
저는 세계 각국의 회사들과 거래를 하지만 의외로 영어를 능숙하게 잘하는 것은 아닌데요. 신기하게도 양말 이야기는 귀에 쏙쏙 잘 들어왔습니다. 전세계 양말장수들은 공통적으로 양말이야기만 나오면 신나서 멈출 줄을 모른답니다.
양말 이야기만 나오면 진지해지는 CHUP의 YOSHI님
금주에는 제가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인 "양파인"에 새로운 에피소드도 업로드 되었습니다. 저의 아내인 강부장과 함께 세줄 요약없는 글은 읽지 않는다는 시대에 책과 독서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눠보고 서촌점 2층의 서점 기획 이야기도 나눠보았습니다. 관심이 가시는 분들은 한번 들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제 해도 길어지고, 날씨도 많이 더워졌네요. 원래 양말은 여름이 비수기라 양말장수들은 대부분 여름병을 앓는데 저는 뭔가 이번에 빨리 앓고 끝낸 것 같아서 신나는 여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께 보내드리는 편지도 어느덧 열여덟번째가 되었네요. 몇몇 삭스레터를 받아보시는 구독자 분들은 매장에서 인사를 나누기도 했지만, 대부분 어떤 분인지 모르는데, 이렇게 계속 편지를 쓰다보니 왠지 모르게 조금 가까워 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성태민 드림
P.S 삭스레터에 답장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진심으로 감동을 받기도 하고,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본 메일 주소로 답장을 주시면 저는 즉시 모두 확인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점장 구달의 서촌통신
서촌은 까마귀 전성시대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촌이라 불리는 서울의 오래된 동네. 이 계절이면 싱그러운 연둣빛 잎사귀를 틔운 은행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풍경이 특히나 아름다운 서촌의 어느 모퉁이에 까마귀가 출몰했다는 소식이다. 통의동 백송 터 뒤편, 고운 연회색 벽돌로 지은 2층 건물 출입구에서 녀석을 만날 수 있다. 가느다란 다리를 쭉 뻗고 앉은 자세며 발끝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듯한 표정이 여느 평범한 도시 까마귀와는 사뭇 다른 인상을 풍긴다.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건물 앞을 천천히 지나가던 어르신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되돌아와 까마귀를 본다. 그리고 묻는다. “여긴 뭐 하는 데요?”
서촌은 한사코 존재감을 감추려는 듯 골목으로 쏙 숨어든 작은 가게들이 은밀히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고즈넉한 동네다. 한복 차림의 관광객, 인왕산을 오르려는 등산객, 청와대를 구경 온 행락객이 뒤섞여 시끌벅적한 주말에도 구불구불 꺾인 골목 안쪽은 서촌 특유의 차분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좋은 세상은 따뜻한 발에서 시작되지 : 히그 박수빈 대표자신의 일을 하며 살면 잦은 성취감을 누릴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책과 불안, 욕심 같은 감정들도 숨어있기 마련입니다. 자신에게 유독 엄격해지고, 목표했던 바를 이루기도 전에 더 큰 꿈을 꿈꾸면서 스스로 채찍질하기도 하죠.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그 길을 선택했다면 당연히 감내해야 할 무게라고 여기면서요.
그런데 여기, 그저 감사하고 그저 행복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양말이 좋았고 지금이 좋다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 표현하는 그는 바로 히그의 박수빈 대표인데요. 만족의 탁월한 정도를 유지하는 그를 통해 담백한 열정을 배웠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그가 만드는 물건에 고스란히 묻어, 매일 아침 자기만의 양말을 고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나눕니다.
히그는 이제 3년이 된, 상대적으로 큰 브랜드는 아닙니다. 하지만 밀도가 높고 성장 가능성이 큰 브랜드였어요. 이건 수치적으로 분석한 결론이 아닙니다. 박수빈 대표의 긍정적인 태도와 체계적인 계획, 뚜렷한 확신에서 알 수 있었어요. 히그의 세계에 빠져드는 사람이 저뿐만은 아닐 거라는 것을.
모든 질문에 앞서서 궁금했던 것이 있었어요. 히그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정말 가까운 지인 말고는 얘기한 적이 없는데요, 쑥스럽지만 ‘홍익인간'을 이니셜로 만든 이름이에요. 한국의 뽕을 조금 묻히고 싶기도 했고 좋은 세상은 따뜻한 발에서 시작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좋은 세상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되죠. 양말이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겠네요 (웃음). 좀 원대한 꿈이긴 하지만 그럴 수 있겠죠? (웃음)
커다란 이름만큼 양말로 시작해서 더 큰 무엇을 이루고 싶었던 건가요? 히그는 지금 어떤 브랜드인가요? 히그는 ‘Dress your feet’라는 슬로건 하에 모든 제품을 직접 디자인, 제작하는 양말 전문 브랜드예요. 양말이 단순 풋웨어에서 그치지 않고 패션 아이템이나 액세서리로써 만족감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 이상의 대단한 꿈을 꾼 것은 아니에요.
소박한 목표와 큰 비전을 담은 이름이 주는 모순적인 느낌이 흥미롭네요. 대표님의 배경이 궁금해져요. 패션을 공부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경영경제학부 국제물류학과를 전공했고 대사관에서 상무보좌관으로 일했어요. 수출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사무관님을 보좌하는 일이었죠. 2년 반 정도 재직했는데, 직업 특성상 서포트하는 업무가 대부분이라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성취감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너무 늦기 전에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죠. 그렇게 반년 정도 독립을 준비했습니다.
그 기간에 구체적으로 뭘 준비했나요? 양말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던 터라, 전국의 모든 공장에 전화를 돌렸어요. 한 번만 구경시켜 달라고요. 쉬는 날마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공장 투어를 다녔어요. 죄송했지만 질문도 많이 드렸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거든요. 디자인 작업도 직접 해야 했기에 유튜브 보면서 그래픽 툴을 독학했어요.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자원이 많은 시대라 다행일 따름이죠. 지금도 모든 디자인 작업을 직접 하고 있어요.